출처 : 한겨레신문 https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1126269.html
–1983년 이전의 박경석, 즉 젊은 비장애인 박경석이 지금 장애인 운동가 박경석이 사는 모습을 보면 뭐라 할까요?
“그때 박경석은 지금의 박경석을 안 봤겠죠. (웃음) 봤다면 ‘불쌍하다’고만 할 거예요. 그때는 소아마비라고 부르던 지체장애인을 몇 번 우연히 볼 기회밖에 없었어요. 장애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, 특히 본인이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죠. 장애를 당했을 때도 이대로 사느니 죽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요.”
“1983년에 장애를 입은 뒤 5년 동안 집에 혼자 있었어요. 그때는 ‘느끼지 못해’ 힘들었어요. 행복, 고통, 불행, 이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. 시체처럼 무감각했죠. 괴로운 것도 없고, 감흥도 없고, 그게 힘들 때의 마지막 단계인 것 같아요. 지금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많습니다.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요.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이 기쁨이 아닌가. 고통이 있어야지 기쁨을 느낀다는 거였어요.
행글라이더 사고로 비극적 운명이 내게 다가왔지만, 그것도 프로메테우스처럼 내게 주어진 삶이었어요. 싸우면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. 노들야학에서 학생과 교사들은 서로 함께 가르치며 배웠어요. 그들의 힘으로 이동권의 힘을 실질적인 투쟁으로 만들어온 자부심이 저를 계속 남아있게 했어요.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요. 존중은 쟁취해야 하는 거지, 동정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. 그런 것들을 알게 됐는데 안 싸울 수 없죠.”
그 외침의 첫 출발이자 중요한 의제는 장애인 이동권이죠.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특별교통수단을 포함한 모든 대중교통 이용을 이야기합니다. 전장연 투쟁으로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더 많은 혜택을 입는다고 보고요. 서울 지하철의 95%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습니다.
우리 모두 늙어가잖아요.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이동권 문제가 모든 시민에게 다 연결되더라고요. 저희가 최종적으로 외치는 건 발달장애인들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 탈출(exodus)하는 것입니다. 발달장애인이 죄인이 아니잖아요. 우리 모두 지역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자는 거예요. 좀 이따 얘기하겠지만, 이것도 비장애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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